본문으로 이동

김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균(金稛, 1341년 ~ 1398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군호는 계림군(鷄林君),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신라 제38대 열조 원성왕의 후손으로, 고려초 육위장군과 안서홀 성주를 역임한 김순웅(金順雄)의 13세손이다. 1360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조준이 국정을 맡을 때 여러 번 천거되었고,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 3등공신에 책록되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사후 제숙(齊肅)의 시호가 내려졌다. 슬하에 김맹성(金孟誠)·김중성(金仲誠)·김계성(金季誠) 세자녀를 두었다.

김균의 후손으로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의 친정 아버지 김주신, 구한말 총리대신 김홍집이 있다.

김균선생묘》는 경기도 광주시 능평동에 있다. 묘역은 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각 1쌍씩 배열되어 있다. 상석의 왼쪽에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쪽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비문은 송병선이 짓고 윤용구가 글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 묘역의 건립 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보이며, 묘비는 그 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계림군 부조묘》는 전북 임실군 삼계면 후천로 43에 있다. 계림군 김균의 8대손 취수당 김성진이 임실 삼계(당시 남원 아산방)에 입향하면서 이곳에 옮겨졌으나, 사당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1660년경 참판공 김시진이 전라감사 재임시절에 사당을 창건하였고, 1824년 중건하였다. 그리고 1996년 김진억 임실군수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족 관계

[편집]
  • 할아버지 : 김기연(金起淵)
    • 아버지 : 김지윤(金智允)
    • 어머니 : 권현(權鉉)의 딸
      • 부인 : 정경부인 권씨, 정경부인 윤씨
        • 장남 : 김맹성(金孟誠)
          • 손자 : 없음
        • 차남 : 김중성(金仲誠)
          • 손자 : 김안민(金安民)
          • 손자 : 김신민(金新民)
          • 손자 : 김인민(金仁民)
        • 삼남 : 김계성(金季誠)
          • 손자 : 김종순(金從舜) - 판윤(判尹) 참호공(叅胡公) 청백리(淸白吏) 선정

같이 보기

[편집]
  • 김균선생묘 - 경기도 기념물 제105호
  • 경주김씨 계림군파 - 계림군 김균을 파조로 하며, 임실군 삼계면에 대종가와 부조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