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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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음(王音, ? ~ 기원전 15년)은 전한 말기의 관료이자 외척으로, 위군 원성현(元城縣) 위속리(委粟里) 사람이다. 성제의 생모 효원황후의 사촌형제이다.
생애
[편집]시중중랑장(侍中中郞將)·시중태복(侍中太僕)을 역임하였다.
경조윤 왕장이 성제에게 대사마 왕봉(왕음의 사촌형제)을 배척할 것을 진언하였다. 왕음은 왕봉에게 이를 알렸고, 왕봉은 왕장의 계획을 저지하여 권력을 독차지하였다.
이듬해, 왕봉이 죽었다. 왕봉은 성제에게 왕음을 후계자로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때문에 왕음은 대사마거기장군이 되고 안양후(安陽侯)에 봉해졌다. 왕씨 일족들이 사치와 횡포를 일삼는 와중에도, 왕음만은 간언을 하는 등 충절을 잃지 않았다.
영시 2년(기원전 15년)에 죽으니[1] 시호를 경(敬)이라 하였고, 아들 왕순이 작위를 이었다. 대사마는 왕봉의 동생 왕상이 임명되었다.
출전
[편집]각주
[편집]- ↑ 한서 성제기에서는 정월 기축일, 백관공경표에서는 정월 을사일이라고 한다.
전임 왕장 |
전한의 태복 기원전 26년 ~ 기원전 23년 4월 계묘일 |
후임 사주국 |
전임 장충 |
전한의 어사대부 기원전 23년 4월 계묘일 ~ 기원전 22년 9월 갑자일 |
후임 우영 |
전임 왕봉 |
전한의 대사마 기원전 22년 9월 갑자일 ~ 기원전 15년 |
후임 왕상 |
선대 (120년 전) 주좌거 |
전한의 안양후 기원전 20년 6월 기사일 ~ 기원전 15년 |
후대 아들 왕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