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벽화 (Roman wall painting sty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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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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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mple of Fourth Style painting, before 79 C.E., fresco, Pompeii

<왜 폼페이인가? >
고대의 회화들은 남아있는게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회화는 돌이나 청동 조각상보다는 훼손되기 쉬운 표현도구이다. 하지만 고대 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 덕분에 우리는 로마 벽화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폼페이는 도시 전체가 79년에 화산재에 묻혔다. 베수비오산이 분화한 이후, 집이나 기념물에 있던 벽화의 풍부한 컬러가 다시 발견될 때까지 수천년이 지났다. 이러한 그림들은 거의 2세기 가량 연속되는 역사적 증거이다. 그리고 19세기 독일 학자인 아우구스트 마우 덕분에 우리는 폼페이의 벽화를 4종류로 나누게 되었다. 

View of Mount Vesuvius from Pompeii

마우가 분류한 이 네가지 종류는 로마나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그렇게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베수비오스 화산재에 묻혀있던 폼페이와 그 주변 도시에는 당대를 보여주는 가장 광범위한 증거 자료들이 남아있다. 마우가 분류한 폼페이의 로마 벽화들은 아직 마르지 않은 회반죽 위에 염료를 발라 벽에 염료를 고정시키는 프레스코 방식이었다. 프레스코는 나름 오래 가는 방식이긴 했지만 그림이라는 수단 자체가 워낙에 잘 망가지고 한번 빛이나 공기에 노출되면 금방 희미해져버리는 탓에 폼페이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사실 그렇게 흔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없다.

Example of First Style painting, House of Sallust, Pompeii, built 2nd century, B.C.E.

폼페이에서 살아남은 그림들을 마우는 4가지 스타일로 구분했다. 처음 두개는 공화정 시기에 유행했던 것이고, 그리스 예술 경향이 후퇴하던 때였다. 뒤의 두가지 스타일은 제정 시기에 유행했던 것이다. 마우가 구분한 시대순에 따른 스타일 변화는 다른 학자들에 의해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약간의 개선과 이론적 보강을 통해 일반적으로는 마우의 접근 방식이 인정받고 있다. 하나의 스타일에서 다른 하나의 스타일이 나타나는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을 넘어, 마우의 분류는 예술가가 벽을 어떻게 구획했는지, 벽에 사용한 페인트, 컬러, 이미지와 형태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Example of First Style painting, House of the Faun, Pompeii, built 2nd century, B.C.E.

<첫번째 폼페이 스타일>
마우는 첫번째 스타일을 "Incrustation 스타일"이라고 불렀으며 그 기원이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첫번째 스타일은 컬러풀하고, 밝게 채색된 모조 대리석을 벽에 패치워크 방식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 직사각형의 채색된 "대리석"은 3차원적 효과를 부가해주는 석회벽토의 몰딩과 연결되어 있었다. 신전이나 다른 공공 건물에서 로마인들은 비싼 수입 컬러 대리석으로 벽을 치장했다.

Detail of faux marble, Villa of the Mysteries, before 79 C.E., fresco, just outside the walls of Pompeii on the Road to Herculaneum

보통의 로마인들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럭셔리한 노랑, 보라, 핑크색 대리석을 흉내낸 모조품으로 집안을 장식했다. 화가들은 큰 직사각형의 판넬을 벽에 붙여 회오리 치거나 가는 줄무늬가 있는 진짜 대리석처럼 보이게 하는 스킬을 터득했다. 이러한 첫번째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품은 파우누스의 저택과 House of Sallust에서 볼 수 있는데 둘다 폼페이에서 방문할 수 있다.

<두번째 폼페이 스타일>
두번째 스타일은 마우가 "Architectural 스타일"이라고 부르던 것으로, 폼페이에는 기원전 80년 경에 나타나서 기원전 1세기 말까지 유행했다. 이 두번째 스타일은 첫번째 스타일에서 진화한 것이며 베이스 벽을 따라 붙인 모조 대리석 블록 같은 첫번째 스타일의 요소들을 여전히 포함하고 있었다.

Example of Second Style painting, cubiculum (bedroom), Villa of P. Fannius Synistor at Boscoreale, 50–40 B.C.E., fresco 265.4 x 334 x 583.9 cm

다만, 첫번째 스타일의 평면의 벽으로 보이는데 비해, 두번째 스타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의 착시 효과를 이용해 마치 창문을 통해 보는 것과 같은 트릭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마우는 두번째 스타일에 붙인 이름을 통해 건축적 요소가 기둥, 빌딩, 주랑이 그려진 착시 효과를 끌어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mple of Second Style painting, cubiculum (bedroom), Villa of P. Fannius Synistor at Boscoreale, 50–40 B.C.E., fresco

두번째 스타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P. Fannius Synistor’s bedroom(현재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재구성되어 있다)으로, 화가는 여러개의 소실점을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방 여기저기로 원근감이 이동한다. 발코니에서 분수로, 멀리 떨어진 열주로. 방문객의 눈도 계속 움직이지만 자신이 현재 작은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Example of Second Style painting, view of the Dionysiac frieze, Villa of the Mysteries, before 79 C.E., fresco, 15 x 22 feet, just outside the walls of Pompeii on the Road to Herculaneum

폼페이의 Villa of the Mysteries에 있는 디오니소스 그림 역시 그 착시적 효과 때문에 두번째 스타일에 해당된다. 그림속 인물들은 메갈로 그라피아, 그리스어로 실물 사이즈의 그림을 말한다. 채색된 인물들이 공간을 나누는 기둥 앞에 앉아있는 방식이나 방에 들어간 관람객과 같은 크기라는 사실은 관람객 주변에서 마치 이것이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세번째 폼페이 스타일>
세번째 스타일, 마우는 "Ornate style"이라고 부르는 것은 약 1세기 경에 나타나 대략 50년까지 인기를 끌었다. 넓은 단색-검은색이나 어두운 빨강 같은-의 컬러를 사용해 벽면을 칠하는 세번째 스타일에는 세세하고 복잡한 디테일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Example of Third Style painting, panel with candelabrum, Villa Agrippa Postumus, Boscotrecase, last decade of the 1st century B.C.E.

세번째 스타일은 건축적이라고는 하지만 관람자가 그들의 일상세계를 볼 수 있게끔 건축적 요소를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것이라고 할 수있다. 환상적이고 잘꾸며진 기둥이나 페디먼트로 장식된 이 세번째 스타일은 채색된 벽이 안의 상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는 세번째 벽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 그림들이 실제보다 더 흉물스럽다고 비판하면서 "for instance, reeds are put in the place of columns, fluted appendages with curly leaves and volutes, instead of pediments, candelabra supporting representations of shrines, and on top of their pediments numerous tender stalks and volutes growing up from the roots and having human figures senselessly seated upon them…"(Vitr.De arch.VII.5.3)라고 이야기했다. 벽의 가운데에는 종종 아주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농촌의 가축, 목동, 신전, 사당이나 구불구불한 언덕을 그린 종교적이면서도 목가적인 그림들이었다.

Example of Third Style painting, panel with candelabrum (detail with Egyptian motif ), Villa Agrippa Postumus, Boscotrecase, last decade of the 1st century B.C.E.

세번째 스타일은 또한 이집트 스타일의 소재와 이미지-나일강의 풍경이나 이집트의 신들, 혹은 그 모티프들-를 도입하였다.

<네번째 폼페이 스타일>
네번째 스타일은 마우가 “Intricate Style”이라고 부르던 것으로 1세기 중반에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폼페이에서는 도시가 멸망하는 79년까지 나타난다. 이 양식은 앞서 나온 세개의 스타일을 혼합한 것이라고 말하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첫번째 스타일처럼 벽의 아랫부분을 따라 배치한 대리석 블록이나 두번째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건축 양식을 프레임으로 만든 것, 그리고 이들은 세번째 스타일에서 나타나 커다란 평면의 컬러벽과 가느다란 건축적 디테일과 합쳐진다. 또한, 가운데에는 패널 그림이 달려있는데 세번째 스타일에 비해서는 보다 커다란 크기에 더욱 다양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신화나 장르화, 풍경, 정물화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가 네번째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대 플리니우스는 분명 재능이 있긴 하지만 좀 기이했던, 네로의 저 유명한 골든 팰리스를 장식했던 화가 Famulus에 의해 이 스타일이 발전했다고 이야기했다. 네번째 스타일을 보여주는 가장 최고의 사례는 House of the Vettii이며 오늘날 폼페이에서 방문해 볼 수 있다.

Example of Fourth Style painting, Ixion Room, House of the Vetii, Pompeii, 1st century C.E.

<포스트-폼페이안 페인팅 : 그 후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마우는 폼페이와 그곳에서 발견되는 회화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79년 이후의 로마 회화는 어떨까?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집과 기념비적 건축물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더이상 다섯번째나 여섯번째의 스타일이란 것은 없다. 후기의 로마 회화는 이전에 있었던 그림들을 혼합한 모방작품(=파스티셰)들이었다. 이러한 고대 말기의 회화는 기독교의 카타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로마의 테크닉과 기독교적 주제가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이다.

Text by Dr. Jessica Ambler

Suggested readings:
Clarke, John R. The Houses of Roman Italy, 100 B.C.-A.D. 250: Ritual, Space, and Decoration.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Ling, Roger. Roman Painting.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Mau, August. Pompeii: Its Life and Art. Translated by Francis W. Kelse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02.  (Available on Kind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