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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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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는 춘추 시대전국 시대를 아우르는 말이며, 기원전 770년 (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시황제(始皇帝)가 통일한 시기까지며, 선진 시대(先秦時代)라고도 한다.[1]

550년간 지속했으며, 이 시대는 중국사상 개화결실의 시기였다.[1] 이 시대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1] 상업이 많이 발달하였고 이때부터 사용했었다.

배경 및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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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가 견융족에 의해 도읍을 낙읍으로 옮기자 주 왕실이 약화되어 봉건제가 약화됨에 따라 각각의 제후국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발전시키고 인재를 등용하여 주왕실에 반기를 들고 춘추 전국 시대의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 및 제자백가사상, 뛰어난 장군이 나타났던 시대이다. 특히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의 일곱나라가 일어나 서로 대립했다.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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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때는 상공업이 많이 발전하였고, 철제로 된 물품을 상용하였으며, 남북조 시대와는 달리 인재의 등용에 힘을 써서 안으로는 치안평화를, 밖으로는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였다. 또한 제자백가등의 사상이 많이 발전되었다.

사상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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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 사회는 큰 변혁을 일으켰다.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짐으로써 중앙집권체제는 무너지고,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함으로써 사회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졌다. 인구의 증가, 민족의 대이동, 정전제도(井田制度)의 붕괴 등은 봉건체제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제후(諸侯)들의 세력신장은 전쟁을 발발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상의 태동을 요구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2]

시간이 지날수록 주나라의 혈연 의식이 약화되었고 자연히 왕과 귀족들의 관계도 약화되었다. 귀족들은 춘추시대까지는 그럭저럭 주나라를 숭배하였으나 제후국 내부에서도 점점 하극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곧 주나라 역시 하극상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춘추전국 시대의 연이은 투쟁과 경쟁에서 위기감을 느낀 귀족들은 다투어 대규모 정복, 개간사업을 추진하였고 중국의 영토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유가와 묵가는 개인의 신분적 세습을 반대하고 실력보단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개인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였다. 유교는 선한 사람이나 친한 사람, 위대하거나 고귀한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사랑을 주장하였고 묵가는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이 없는 겸애를 주장하였다. 법가와 병가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권위와 형벌을 무기로 삼아 복종을 강요하였으며 능력보단 실력을 중시하였다. 군대에 있어서 법가는 법을 중시하고 병가는 자율성을 중시하였다. 도가는 자연이나 개인의 초월성을 추구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거나 불로불사를 시도했다. 유학자들은 귀족들에게 탄압을 당하였으나 백성들에게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진나라의 통일은 의외로 귀족들의 멸망으로 끝나게 되었으며 진시황이나 항우의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이 점점 새로운 지배층이 되었다. 한고조와 같은 평민들에게 패배한 귀족들은 민간에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그들이 가졌던 세력과 권위는 큰 타격을 받았다. 한무제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며 장안에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을 가르치는 박사를 두었다. 무제는 시험과 추천을 통하여 유학을 공부한 학자가 관리가 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확립하였다. 하지만 귀족의 그림자와 잔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유학의 주례를 참고하여 호족들에 대한 토지 제한과 노비 매매를 금지한 왕망은 그 반동으로 호족들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족들도 결국 광무제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유교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이제는 유교적 도덕을 실천하기만 해도 관리가 되기 시작하였고 다른 사상들은 압도적 열세에 처하게 되었으며 한족의 중국은 유교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을 정복한 유목민 귀족들은 한화가 진행되기 전에는 대규모 석굴사원을 만든 선비족처럼 유교보다 업설 등이 있는 불교를 믿는 성향을 가졌으며 혈연적 세습가문을 중시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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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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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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